[숨겨놓은 '정부 규제' 7000개 보니…] 영업정지 결정·사립대 통폐합… 공무원, 규제 통해 권력 휘둘러
여권 효력·영유아 검진 등 실생활에 밀접한 것도 많아… 미등록 규제, 개혁대상서 빠져… 불합리해도 바로잡기 힘들어
이명박 정부에서 각 부처의 규제 수가 두 배 이상 뛰었다. 2008년 말 36개 중앙 부처의 총 규제 수는 5186개였지만 올 5월에는 1만2795개로 늘어났다. 규제를 풀겠다고 한 이명박 정부에서 오히려 규제가 급증한 이유는 무엇일까? 직전 노무현 정부 때까지 집계되지 않고 숨어 있었던 규제(7087개)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총리실은 2009년 초부터 1년간 전체 규제 숫자를 파악하기 위해 전 중앙 부처의 법령상(법률·시행령·시행규칙) 규제를 전수 조사했다. 그 결과 총 6160개의 숨은 규제를 발견했는데 이는 2008년 말 등록돼 있던 규제보다도 많은 수였다. 총리실은 이어 2010년부터 올해 3월까지 각 부처가 자체적으로 발령하는 행정규칙(고시·훈령)도 조사했고 그 안에서도 927개의 숨은 규제를 추가로 찾아내 등록시켰다.
총리실 관계자는 "현 정부 들어 신설된 규제가 철폐된 규제보다 적은데도 규제 수가 급증한 것은 전 정권까지 묻혀 있었던 규제가 워낙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7000개가 넘는 미등록 규제는 관리 대상에서도 빠지기 때문에 각 부처는 이를 통해 사실상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휘둘러 온 것"이라고 했다.
각 부처가 숨겨 놓았던 규제들은 실생활과 밀접한 것들이 많았다. 발급된 여권을 6개월 동안 받아가지 않으면 여권 효력을 없애는 규제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칠 때 휴대전화 사용 등 부정행위를 저지른 응시자에 대해선 해당 시험을 무효 처리하는 규정도 새로 등록됐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일정 기간이 지나지 않으면 공무원에 임용될 수 없다는 규제와 각 지방자치단체장이 안보 등의 이유로 특정 건축물에 대한 철거를 명할 수 있다는 규제도 총리실이 새로 발견했다. 영·유아 건강 검진의 대상을 한정한 규제, 매일 이용하는 엘리베이터의 안전 검사 기준, 개인 정보 보호 규정, 전국 100개가 넘는 사립대학의 통폐합 기준도 등록됐다.
기업과 산업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규제들도 그동안 규제로 분류돼지 않아 왔다. ▲불공정거래 행위 심사지침(공정위) ▲피감기관 영업정지 결정(금융위) ▲농산물 품질 인증에 관한 규정(농식품부) ▲인터넷·멀티미디어 방송의 허가 기준(방통위) ▲변호사 자격·결격사유 규정(법무부) ▲의사 국가시험 중 실기시험 합격자 결정 방법(복지부)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 같은 규제가 총리실에 등록돼 있지 않으면 규제의 내용이 불합리하다 해도 바로 잡기가 어렵다. 정부의 관리·개혁 대상이 되는 것은 등록된 규제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갈수록 미등록 규제는 시대에 뒤떨어질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각 부처가 이제껏 수천 개의 규제를 등록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규제는 곧 부처의 힘'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었던 때문으로 보인다.
또 김대중 정부 시절 공무원들이 입은 '트라우마(정신적 외상)'도 규제 등록을 꺼리는 주요 원인이라고 한다. 총리실 관계자는 "IMF 위기 극복 차원에서 김대중 정부 시절 모든 부처의 규제를 절반으로 줄이고, 없어진 규제를 담당하는 인력도 함께 줄이라는 지시가 내려와 공무원 사회가 공포에 휩싸인 적이 있었다"고 했다. 규제를 신고했다가 규제와 인력을 줄이라는 압박을 받을까 봐 각 부처가 몸을 사려 왔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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