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2월 23일 수요일자인 바로 어제의 조선일보가 내게 3개의 읽을거리를 제공했다.
그 하나는 A27 스포츠 면에 실린 ‘골프 아닌 골프 플로그톤’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엄격한 룰과 예절을 중시하는 전통적 골프 방식에서 벗어나, 편하고 쉽게 골프를 치는 방식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 그런 방식의 골프를 ‘골프가 아니다’라는 의미의 영문 ‘Not Golf'를 거꾸로 쓴 ’플로그톤‘(Flogton)이라고 이름 짓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예를 들어, 매 홀마다 ‘멀리건’ 한 개씩을 준다거나, 공의 위치를 멀리까지도 마음대로 옮길 수 있게 한다거나, 스리 퍼터 이상은 무조건 OK로 친다거나, OB는 아예 없다거나, 페어웨이에서도 티를 꼽고 칠 수 있게 하는 등, 가급적이면 신경이 쓰이지 않게끔 하는 방식으로, 골프 룰을 새로이 정했다는 것이다.
비싼 비용을 들여 골프를 치면서, 굳이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미국 IT산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 전, 현직 CEO들이 즐겨 그 방식으로 골프를 친다는 것이다.
내 요즈음 골프를 치는 방식도 그렇다.
이제 나이가 좀 더 들면 아예 골프채를 들 힘도 없을 것이고, 재미 또한 젊은 시절보다는 못할 것인데, 그때 가서도 가까운 사람들과 서로 잘난 척하면서 다투는 것이 옳지 않을 것만 같아서, 나는 일찌감치 다투지 않는 골프를 쳐왔다.
내 경우에는 그 도가 좀 지나쳐서, 아예 잘 치는 사람이 돈을 잃는 게임 룰을 만들어 골프를 치기도 하고, 심지어 골프 타수와는 전혀 관계없이 홀컵에 공을 먼저 넣는 사람이 돈을 따는 식으로 승부를 운수에 맡기는 방식의 소위 ‘먼저 똥’이라는 희한한 게임까지 새로 만들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승부의 세계란 결국은 속임수의 세계다.
골프도 마찬가지여서, 어쨌든 상대를 이겨보려고 ‘알까기’라거나 ‘터치’라거나 하는 더러운 눈속임을 하는 경우가 허다하고, 나 역시 그런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실전에서 속임수를 쓴 적이 있다.
오랜 세월 그런 경험 끝에 내가 깨우친 것이, 승부의 세계에 몰입하여 도토리 키 재기 식으로 서로 견주는 것보다, 어울림이 인간관계에서는 더 소중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그 바뀐 생각을 실천에 옮긴 지금은, 난 늘 재미있게 주위와 어울려 골프를 친다.
그 둘은 A33 오피니언 면 맨 위에 실린 에세이 한 편으로, 내 마음에 찌릿한 감동으로 담겨든 글이었다.
한양대 윤석산 교수가 쓴 그 에세이는 ‘어머니가 담배를 배운 이유’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었다.
-6.25 피란길, 총 맞은 아버지, 옆구리에서 피고름 흘러, 보다 못한 어머니, 매일 입으로 빨아냈는데...역겨운 냄새 없애라면 친척어른이 담배 건네줘-
글 속에서 그렇게 뽑아내어 앞세운 요약 글 하나하나만으로도, 내 마음엔 이미 찌릿한 감동이 담겨들고 있었다.
총상의 옆구리에 고이는 피고름을 입에 담아 그 남편의 목숨을 살린 그 엄마의 헌신적 삶도 감동이지만, 주위의 존경을 받는 이순 나이의 대학교수 신분으로서, 담배를 피우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글로 써내는 그 용기 또한 내 가슴에 깊은 감동으로 담겼다.
자칫 ‘어머니가 담배를 배운 이유’라는 그 제목만으로, 내 마음에 ‘몹쓸 엄마’라는 욕을 담았다면, 정말 크게 후회할 뻔했다.
그 셋은 A34 오피니언 면 맨 위에 ‘허무 개그 스파이 쇼’라는 제목으로 실린 김창균의 칼럼이었다.
‘망보는 사람 없는 국정원 침투 작전, 현지 말도 못하는 해외 정보활동, 모사드 요원 눈엔 어떻게 비칠지’라는 요약 글만으로도 그 칼럼이 추구하는 글의 방향을 알만 했다.
내가 관심을 두었던 것은, 칼럼의 주제가 된 우리나라 정보원들이 인도네시아 특별사절단이 묵고 있는 호텔에 잠입해서 무기 협상자료를 빼내려다 들킨 사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칼럼의 제목으로 인용된 ‘허무 개그’라는 문장으로서, 10여 년 전 어느 개그 프로에서, 두 젊은 신인 개그맨이 출연해서, 짧은 대화와 간단한 몸짓으로 시청자들을 웃기던 바로 그 ‘허무 개그’가 그 문장으로 연상된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식의 개그였다.
-두 젊은이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마주 서 있다가 드디어 걸어서 다가가기 시작한다. 그 순간 한 쪽 젊은이가 두 손을 들어 흔들며 ‘불이야!’라고 외친다. 그때 마주오던 다른 한 쪽 젊은이가 걸음을 멈춰 서서 놀란 척 하다가 ‘꺼!’라고 간단하게 말한다. 그때 앞서 ‘불이야!’라고 외쳤던 젊은이가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한 번 갸우뚱하고는 ‘어? 그래.’라고 답을 하고는, 서로 언제 그랬느냐는 듯 무심히 지나치고 만다.-
언뜻 보기에는 한낱 우스개일 뿐인 것 같지만, 실은 하나하나 우리들 인간관계의 대화부족과 몰이해 시대상을 꼬집는 내용들로, 나름의 깨우침이 있는 소재들을 다뤘다.
2011년 2월 23일 수요일인 어제 저녁 6시, 강원도 춘천시 삼천동 300-3번지 춘천베어스관광호텔 B1 봄내홀에서 있었던 재단법인 ‘행복세상’ 주최의 ‘제 1회 강원행복포럼’을 다녀왔다.
강연자로 나선 재단법인 ‘행복세상’ 김성호 이사장의, ‘행복국가의 길’이라는 제목의 1시간 남짓 특강은, 홀을 가득 메운 300여명 청중의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았다.
나는 김 이사장이 강연의 끝에 내세운 ‘행복국가 실현을 위한 시민의 역할’에서 ‘나눔과 배려’를 강조하면서 인용한 미국 실업가 록펠러의 일화 하나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일화를 여기 소개한다.
-록펠러가 55 세 되던 해, 뜻하지 않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 검진을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에 들어가는 그의 눈에 현관에 걸린 액자 하나가 비쳐들었습니다.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을 많이 받는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록펠러는 몸에 전율이 일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 때 병원 접수창구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초라한 행색의 어느 아주머니가 자신의 딸인 어린 소녀를 입원시켜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였습니다. 병원 측에서는 그 아주머니가 치료비를 낼 수 없음을 알고 그 소녀의 입원을 거부하고, 어머니는 계속 울면서 사정을 하는 그런 광경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록펠러가 문득 느낌이 있어 비서를 시켜 그 모녀 몰래 입원비를 대신 지불하게 하였습니다. 뒷날 소녀가 병이 완치된 것을 알게 된 록펠러는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고 합니다. ‘나는 여태까지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 줄 몰랐다.’라고 말입니다. 록펠러는 그 때부터 나눔의 삶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깁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록펠러재단이 있게 된 그 태동입니다. 그런 와중에 신기하게 1년밖에 못산다는 병까지 나아, 98 세가 될 때까지 록펠러는 자선의 삶을 지속했고, 그리고 그런 자선의 삶은 자식 대까지 이어져 록펠러의 이름을 빛내고 있는 것입니다.-
김 이사장은 록펠러 이외에도, ‘나눔과 배려’의 삶을 산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서, 슈바이처, 이태석 신부, 마더 테레사, 오드리 헵번, 김장훈 등, 다섯 인물을 더 소개했다.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에서 지난 2011년 2월 17일에 내 Daum메일함에 꽂아준 편지 한 통을 다시 꺼내본다.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과 결별을 선언하라.’라는 제목으로 보낸 편지였는데, 그 내용을 여기 옮겨 적는다.
-당신이 늘 보고 있으면서도 사실은 보지 못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보라. 소소한 것에서부터 삶의 기미를 포착하고 파악하는 습관을 길러라. 사물을 반듯하게 보지 말고 거꾸로 보라. 세상을 걸어 다니면서 보지 말고 물구나무서서 바라보라.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을 의심하고, 아름답다고 여기던 것과 끊임없이 싸우고,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과는 결별을 선언하라.-
안도현 시인의 ‘변화는 종이 물고기도 헤엄치게 한다‘에서 인용해온 구절이라고 한다.
내 솔직한 고백으로, 그동안의 내 삶에서 ‘나눔과 배려’ 그것은, 그렇게 익숙한 것도 아니고, 편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러나 이젠 그 생각을 바꿔야 할 때가 됐다.
늘 끼리끼리 모여 키득거리고 남 탓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행복세상을 추구하는 김 이사장의 뜻과 같이, 주위를 두루두루 살펴보고 안아주는 ‘나눔과 배려’의 삶, 그것이 내 남은 삶이었으면 하는 내 스스로의 작심을, 지금 이 순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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