뱅쿠버 동계올림픽이 진행되던 열전17일 동안 우리 국민들은 매일 매일 메달 소식을 들으면서 몸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환희의 앤돌핀으로 행복하기 그지 없었다. 우리 국민들은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 쏠림현상, 집중현상이 유독 강한 민족이어서 작은 감동에도 모든 일손을 놓고 열광한다. 하물며 이번 뱅쿠버 올림픽에서는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물론 올림픽이나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다. 자기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해도 전 세계 국가들과 국민들은 열광한다. 하물며 자기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낸다면 그 열기는 한국에서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러나 한국은 또 다르다. 한국 국민은 그 기쁨과 감동을 반드시 국가와 국민들의 역동적 에너지로 승화시킬 줄 안다는 것이다.
이번 뱅쿠버 올림픽의 결과가 그런 조짐을 예고하고 있다.
뱅쿠버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이 선전하게 되자 전국의 스케이트 링크엔 벌써부터 엄마 손을 잡고 나온 꿈나무들로 붐비고 있다. 이미 김연아가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면서 세계적 스타로 부상하자 그녀가 처음 스케이트를 신었던 과천 실내아이스링크는 이른바 연아키즈(kids)로 붐비기 시작했는데, 뱅쿠버올림픽을 계기로 이곳은 열광적 분위기로 변했다. 이번 대회 기간 중에도 꿈나무들은 아이스 링크에서 얼음을 지치며 응원하고 환호했다. 이번에 16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낸 김연아의 군포수리고 후배 곽민정(16.수리고1년)도 바로 연아키즈이다.
곽민정은 확실한 포스트 연아로 부각되고 있고 고사리손의 연아키즈들도 머지 않아 오늘의 감동을 또다른 역동적 에너지로 일궈낼 것이다.
뱅쿠버의 예가 아니라도 우리에겐 그런 사례가 많다. 프로권투의 미들급 세계챔피언 김기수가 이탈리아의 벤베누티를 꺾고 최초로 세계타이틀을 허리에 두른 이후 한국은 프로복싱 강국으로 변한다. 이 작은 나라, 아직은 배가 고팠던 나라가 김기수의 감동으로 “하면 된다”를 심어주면서 수많은 김기수키즈가 배출됐고 그들은 세계의 링을 석권했다. 4전5기의 홍수환도 그 아류이다. 당시엔 우리 모두가 배고팠었고 배를 채우기 위해 권투를 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계챔피언이 되는 것만이 최선이었다. 우린 그들을 헝그리 복서라 불렀고 배고픔의 투지를 헝그리 정신이라 했다. 그 헝그리 정신은 6~70년대를 풍미하면서 한국이 도약하는 역동적 에너지가 되었다.
여자골프도 마찬가지다. 1997년 나라가 이른바“IMF(국제 통화기금) 구제 금융”으로 파산 지경이 되면서 을사조약 때처럼 ‘ 을사년(을씨년)’ 스러웠을 때 박세리가 메이저 대회인 US여자 오픈에서 우승했다.
당시는 우리 국민들이 또 다른 국민적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을 때였다. 국가가 경제적 위기에 처하면 대체로 정부가 어떻게 해 주든지, 아니면 세계가 원조를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다른 나라의 경우이다. 그러나 한국민은 또 달랐다. 근성과 민족적 집중력을 또다시 발휘해서 세계사에 유례없는 “금 모으기”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고사리 손부터 할머니 할아버지 할 것 없이 집안에서 소중히 간직했던 금을 들고 나왔다. 세계는 세계사에 전무후무한 이 광경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 금이 모아져서 나라부채를 갚으리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겠지만 중요한 것은 ‘뭉치면 극복할 수 있다’는 한국 특유의 집중력이 작동한 것이다. 그러나 그처럼 분연히 일어섰지만 국민 모두의 마음 한 곳은 여전히 뻥 뚫려서 아프고 쓰라렸다. 그런 순간에 박세리의 눈물겨운 맨발 투혼과 승전보가 날아온 것이다. 박세리의 승리는 너무나 벅찬 감동으로 다가와 허전하고 실의에 빠졌던 국민들의 텅 빈 머리와 가슴을 채우는 희망의 메시지로 전파되었다.
박세리로 인한 감동은 우리가 그 어떤 나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없었던 “최 단기 위기극복국가”로 다시 일어서게 하는 민족적 에너지가 된 것이다. 그것은 또 역동적으로 재생산됐다. 동네 곳곳, 전국 방방곡곡의 골프장이 골프 꿈나무로 붐비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박세리키즈들이다. 신지애, 최나연, 박인비, 최송희, 서희경등 세계 무대에서 새롭게 빛나는 한국의 낭자들이 그들이다. 아마도 그들은 머지않아 박세리를 뛰어넘을 것이다.
안타깝고 억울한 예도 있다.
감동을 역동적 에너지로 승화시키는 우리국민들의 결집과 쏠림으로 볼 때, 1988년 올림픽은 국운상승의 절호의 기회였다. 세계가 올림픽 등 큰 대회를 유치하고자 사생결단 하는 것은 결국국운상승과 대변환의 원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까닭이다.
새삼 되돌아 보면 88올림픽은 세계 유례없이 잘 치룬, 세계가 극찬했던 대회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해외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이 미덥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다. 정치, 경제적으로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머물고 있었고 언론자유도 지극히 제한적이었던 미지의 국가였다. 과연 잘 치룰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러나 하나 둘 씩 선수들과 임원들 그리고 각국의 기자들이 속속 입국하면서, 그리고 선수촌과 경기장 등을 샅샅이 둘러보면서 입을 쩍쩍 벌리기 시작했다.
수만명의 자원봉사로 무장한 서비스 편의는 감사와 찬사를 불렀고 경기가 끝나는 즉시 구석구석에 설치된 기록용 컴퓨터에 기록이 실시간으로 제공됨으로서 한국의 IT실력에 외국기자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각 나라 방송사들은 최고의 화질로 빈틈없이 제공되는 화면에 대해 올림픽 사상 최고라고 칭찬했다. 나라의 이미지가 몇 단계 업그레이드 되는 순간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 해외에 나가면 비로서 코리아를 제대로 알아주었다. 그러나 그것 뿐이었고 올림픽의 감동은 1~2년만에 사라졌다. 특수를 누렸지만 일회성에 끝난 것이다. 우리에게 남는 것이 없었다. 올림픽을 열었다는 자부심만 있었을 뿐 국가는 이를 국민적 총화를 통한 국가발전의 토대로 승화시킬 능력이 없었던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그 반성의 토대 위에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가 있었다.
물론 이 때에도 2002년 월드컵축구가 한일공동개최여서 일본과 비교될까봐 크게 걱정을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이 한국과 일본을 번갈아 다니다 보면 교통, 숙박시설, 음식점 등에서 분명히 비교가 될 것이고 한국이 매우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떠했는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오히려 일본이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본에게 지거나 비교당할 수 없다는 애국적 다짐도 있었겠지만 올림픽보다도 더 세계적 대회를 잘 치러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이 또다시 이 ‘한국인’들로 하여금 집중하게 한 것이다. 부족했던 숙박시설, 비위생적인 식당, 겉잡을 수 없는 교통대란 모두가 한번 해보자는 자부심과 국민적 결집으로 해결됐다. 특히 한국 특유의 손님 대접을 상징하는 민박은 두고두고 한국을 잊지 못하게 하는 명품이었다는 평가였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하드웨어에 속한다.
월드컵축구의 역사를 바꾼 최고의 콘텐츠는 “붉은 악마”였다. 붉은 악마는 한마디로 한국민들의 집중과 쏠림을 그대로 보여준 경이로운 것이었다.
붉은 악마는 그 어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우리 젊은이들의 애국적 착상과 용기의 결과였다. 스스로 만들고 구입한 붉은 응원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수십만, 수백만, 수천만이 태극기를 들고 몸에 휘감고 얼굴에 스티커로 부친 채 응원했다. 경기장은 말할 것도 없고 시청앞 광장 광화문 태평로 거리에 수백만이 모여서 대형 전광판을 통해 중계를 보면서 열광했다. 해외에서도 한국 교민, 유학생 상사직원 여행객들 까지 너도 나도 붉은 악마 응원복을 입고 응원했다. 이 신비로운 붉은 악마 응원은 세계적 뉴스가 됐고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은 한국을 넘어 전 세계로 확산되었던 것이다.
우리 선수들도 이와 같은 응원열기에 고무되고 자극받아서 무려 4강에까지 진출하는 기적을 일궈냈다. 그 엄청난 결집의 열기가 4강 진출을 가능케 했다.
그 월드컵 붉은 악마의 열기와 4강신화의 감동은 오늘의 우리가 있게 한 역동적 에너지로 승화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 월드컵 열기를 주도했던 중심세력이 오늘날의 20~40대 초반의 청장년들이다.
특히 20~30대는 오늘날 G세대로 통칭되는 한국의 미래세대들이다. 이들은 독재와 배고픔을 모르고 한국적 유교주의적 교육을 받지 않고 자유분방하게 자란 세대이다. 이들의 컨셉은 당당함이다. 이들은 태어난 대한민국이 마냥 자랑스러운 나라이다. 태극기를 사랑하고 떳떳하게 생각하며 경제적 풍요 속에서 자란 만큼 어디가도 꿀리지 않는다. 주눅들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감으로 실력 껏 경쟁해서 승리할 뿐인 것이다.
뱅쿠버로 돌아가자.
뱅쿠버올림픽에서 김연아가 그런 우리의 신세대 모습을 당차게 보여주었다. 김연아에게 올림픽은 13년에 걸친 자신의 피나는 노력의 최종 결실의 현장이기도 했지만, 너무나 커져버린 자신에 대한 대한민국과 국민 모두의 기대치에다, 전세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집중되어서 엄청난 중압감이 어께를 누르고 있는 무대이기도 했다. 게다가 쇼트프로그램에서는 경쟁자인 아사다 마오가 먼저 연기하는 불리한 상황이었다. 아사다는 보란 듯이 최선의 연기를 펼쳤고 위태롭던 트리풀 악셀을 성공하면서 승리를 자축하는 듯한 표정으로 흥분했다. 이를 조바심하며 지켜보던 우리 국민과 전 세계는 가슴이 철렁했다. 김연아가 저만치 해낼 수 있을까? 김연아의 실력으로 보면 당연히 해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심판진의 구성도 걱정스럽고, 마오의 연기도 훌륭해서 웬만하면 다음 연기자가 주눅들만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우리들은 연아의 표정이 궁금했다. 그런데 다음 순서를 대기하던 김연아의 모습이 화면에 비쳐졌다. 마오의 점수가 73.78로 아주 높게 나온 것을 연아가 보고 있는 모습인데, 김연아는 대수롭지 않다는 아주 평범한 예사로운 표정으로 입을 삐죽하고는 휴지로 코를 훔치고 코치 오서와 눈빛을 마주친 뒤 쏜살같이 링크로 흘러들어갔다. 보는 우리는 기절할 것 같은데 그녀는 그렇게 태연한 강심장이었다. 그리고는 늘 하던 대로 아니 늘 보다 더 아름답고 역동적으로 연기를 해냈다. 그 정도로는 어림 없다는 듯 78.50이란 세계신기록으로 해냈다. 2월26일 프리스케이팅은 더욱 우리를 긴장시켰다. 아사다 마오와는 불과 4점 정도의 차이이고 마오가 트리풀 악셀을 성공시킬 것이 확실시되어서 김연아가 단 한번이라도 실수하면 점수를 무차별로 깎고 뒤에서 연기하는 마오의 손을 무작정 들어주어도 어쩔 수 없을 상황이었다. 빙상경기의 심판들을 보면 능히 그런 결과가 나올법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프리의 연아 프로그램을 알지 못했다. 다만 그동안 연습한 것을 모두 보여드리겠다는 오서코치와 연아의 말만 믿을 뿐이었다.
코발트불루 의상을 입고 연아가 등장했을 때 우린 유심히 표정을 살폈다. 오서 코치의 표정도 살폈다.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태연할 수가 있는지. 오히려 오서코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초조한 빛이었다. 전 세계가 숨을 죽였다.
마침내 연아의 연기가 시작되었다. 연아가 연기할 때 SBS 아나운서와 해설자마저 연기에 몰입한 나머지 말을 잊고 침묵하는 상황이 계속됐다. 미국 캐나다 일본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방송사 중계석도 압박하는 긴장감 속에 말을 아꼈다.
물 흐르듯 하늘을 나르는 듯, 깊은 심연을 유유히 헤엄치듯 그리고 놀라운 스피드와 경이로운 높이와 거리의 강력한 점프로 김연아는 세계의 시선을 잡았다. 불과 4분여초 였지만 마치 깊은 심연처럼 적막하고 숨막혔던 참으로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연기가 끝나는 순간 연아는 전에 없이 울컥 솟구치는 울음을 터트리며 가슴을 손으로 쳤다.
이 순간 방송하던 모든 캐스터와 해설자들이 함께 울컥 눈물을 쏟았다고 우리나라 아나운서가 전했다. 관중들은 모두 일어서 함께 눈시울을 적시며 피겨여왕의 탄생을 우레와 같은 박수로 환호했다. 미국방송 캐스터는 “여왕폐하 만세”를 외쳤다.
더 이상 인간이 해 낼 수 없는 연기였다. 어떤 표현으로도 제대로 묘사할 수 없는 천상의 연기였다. 무결점이란 말이 오히려 어색하고 만점이란 점수가 나오지 않은 것이 섭섭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국민들의 기대치가 높았으면 얼마나 그 동안 부담이 됐으면, 얼마나 이 연기 하나에 모든 것을 걸었으면 그렇게 설움 같이 북받치는 울음이 터졌을까? 그러나 그녀는 해낸 것이다. 그 정신력, 강심장은 우리 미래세대의 모습인 것이다.
김연아의 모습에서 우린 수영의 박태환을 기억해낸다. 박태환은 수영세계선수권 우승과 함께 2008년 8월 10일 베이징의 2008년 하계 올림픽에서 아시아선수 최초로 수영 400m 자유형에서 3분 41초 86의 기록으로 그랜트 해켓, 장린 등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하였다. 박태환도 겨우 21살이다. 김연아 모태범 이상화 등과 함께 겁 없는 G세대이다.
야구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준우승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기라성 같은 베테랑 고참 선수들을 빼고 20대 초반의 새파란 선수들로 구성한 한국이 야구 종주국 미국, 일본, 아마츄어 최강자 쿠바를 무너뜨리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우승한 것은 겁 없는 신세대, G세대의 힘이었다. 세계가 경악했고 일본이 할 말을 잃었다. 불과 인구 4천500만의 강소국이 1억2천의 일본과 13억의 중국에 조금도 뒤지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능가하고, 더구나 세계 최강국들 사이에서 5위라고 하는 전대미문의 결실을 맺은 것은 우리 미래세대들 자신들이 자랑스러워 하는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강한 자부심과, 국민적 결집으로 나타난 성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아쉬운 것은 그들의 노력과 투혼에 국가가 좀 더 뒷받침을 했었더라면 하는 것이다.
세계적 대회가 있고 거기서 우리 젊은이들이 기대 이상의 결실을 얻을 때면 언론에 이런 글이 등장한다.
‘제대로된 국제규격의 경기장 하나 없으며 경기 단체의 지원도 없이 오로지 외롭게 혼자서 사투를 하듯 훈련해온 의지의 결실이다’
김연아가 피겨여왕으로 등극하고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쇼트트랙에서 스피드로 전환한지 불과 7개월만에 2관왕이 된 이승훈도 외롭게 스스로 훈련했다. 조련사 브라이언 오서 코치도 안무를 맡은 데이비드 윌슨도 김연아 부모님들이 고용했다. 그래놓고 그들의 승리를 연맹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파벌이나 만들고 선발전의 잡음만 일으키는 연맹의 고질적 병폐가 없었다면 우리는 더 많은 우리의 젊은이들이 세계를 제패할 수 있었을 것이다. 비단 빙상뿐만이 아니기에 하는 소리다.
또 한가지는 선수층을 넓히지 못하는 단기 성과 위주의 스포츠당국의 단견이다.
김연아 이후에 어떻게 하려는가? 경기 연맹관계자들에게 쓴소리 하고 싶다. 그들은 한명의 스타가 나오면 그 스타가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매달려 연맹의 생색만 내려고 한다. 단기간에 효과가 없어도 미래를 보고 선수를 키우려고 하지 않고 한 명의 스타에게 모든 것을 부담지우는 못된 짓을 해왔다. 마라톤의 이봉주를 보라. 마라톤의 영웅이 결국 요행으로 생색을 내려고 했던 몰상식한 연맹관계자들에 의해 처절한 모습으로 무너지지 않았는가.
김연아 못지않게 기적을 이룬 이상화 모태범 이승훈은 귀국후 방송 인터뷰에서
“뱅쿠버로 향하기 전에 가장 서러웠던 것은 너무나 우리들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무관심이 우리가 금메달을 따게 했다”고 토로했다. 메달 가능성 있는 스타선수에게만 집중하는 매스콤이나 연맹 관계자, 나아가 국가가 얼마나 원망스러웠으면, 그들에 대한 차별과 멸시가 어떠했길래 그토록 처절한 절규를 하는 것인가. 그들은 이번에 메달을 따지 못하면 영원히 죽는다고 생각했단다. 사즉생이었던 것이다. 그런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것이 G세대 라 것이 다른 한편으로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아무튼 이번 뱅쿠버의 열기를 다시금 국민적 총화로 결집해서 또다시 역동적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한다. 좀 더 넓게 저변을 최대로 확대해서 제2의 김연아 모태범, 이상화, 이승훈, 이정우가 나오도록 꿈나무를 조직적으로 국가가 키워주어야 한다. 비록 이번에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참가 이상으로 의미를 남긴 봅슬레이, 그리고 스키를 탔던 설상선수들에게도 국가는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주고 언론은 그들에게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춰주어야 한다. 봅슬레이 썰매가 없어서 빌려고 거기다가 태극기를 붙이고 경기했다는 것을 ‘장하다’라는 공치사로 어물쩡 넘기자는 건가. G세대의 당찬 미래가 전개되는 이 시점에서 볼 때 국가와 경기연맹은 직무유기다.
결코 올림픽의 승리는 요행으로 얻을 수 없다. 뱅쿠버를 보면서 수영의 박태환을 보면서 우리는 대한민국이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면서 스포츠도 선진국형으로 바뀌고 있음을 깨닫는다.
이제는 국민 모두가 뿜어내는 역동적 에너지로 승부할 때이지 60년대의 헝그리 정신이 통할 때가 아니다.
국가나 관계자들만 미래지향적으로 사고하고 노력한다면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나 차기 하계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육상 금메달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창던지기, 투포환, 넓이뛰기, 높이뛰기, 육상 5천미터 등 어디에선가 금메달이 불쑥 나올 수 있다. 지금 전혀 세계 랭킹에 없던 우리의 젊은이들이 불쑥 금메달을 따고 있는 것처럼 우리도, 전세계도 한국의 G세대들의 한계가 어딘지를 모른다. 그 잠재력과 가능성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 한계의 최고치에 우리 젊은이들을 올려야 한다.
승리하고 개선 할 때 퍼레이드나 해주고 포상을 하면서 오히려 생색이나 내는 국가적 뒷받침은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를 짧게할 뿐이다.(구본홍,2010.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