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 무명 개그맨 김민은 앞을 제대로 보 지 못한다. 시각장애 1급인 그는 1m 이
상 떨어 져 있는 사물을 구분할 수 없다. 골목길을 가다 전봇대에 부딪혀 이마가 깨지고, 차도인 줄 모르고 지나다 교통사고를 당할 뻔한 적도 많다. 생계를 위해 동창회나 노인잔치 사회를 보는 일을 빼고는 구조를 훤히 아는 집안에서만 생활한다.
김씨가 집과 같이 여기는 곳이 또 있다.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나눔의 샘' 양로원이다. 그는 10년째 어버이날과 설날, 추석 등 명절에 이곳을 찾아 위문공연을 하고 있다. 지난 2월 26일 김씨가 양로원 강당에 들어섰다. 문과 기둥의 위치를 훤히 외우고 있어 걷는 데 거침이 없다.
의자와 휠체어에 앉아 있던 할아버지와 할머니 100여명이 김씨를 보자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치며 "우리 아들"이라고 반겼다. '아들' 김씨는 '부모들'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 지만 목소리를 듣고 일일이 인사를 했다. 김씨는 "만수무강하세요"라고 큰절을 한 뒤 마이크를 잡고 성대모사를 시작했다. 개그맨 이주일씨처럼 "일단 한 번 박수를 보내 주시라니깐요!"로 시작해 이승만·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노인들이 "잘한다" "똑같다"며 추임새를 넣었다.
▲ 개그맨 김민씨가 경기도 의정부시'나눔의 샘' 양로원에서 노인들에게 성대모사 개그 를 하고 있다.
김씨가 원래부터 앞이 안 보였던 것은 아니다. 그에게도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1980년 동양방송(TBC) 공채 개그맨 2기로 뽑혀 연예 활동을 했다. 개그맨 김형곤·장두석·이성미·이하원씨가 동기들이다. 김씨는 데뷔하자 마자 라디오 프로그램 2개를 맡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언론통폐합으로 일터가 없어 지자 야간업소에서 웃음을 팔았다. 손님들은 가끔 "재미없다"고 술을 끼얹거나 뺨을 때렸다. 그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다. 전세금 사기까지 당해 모았던 재산을 모두 날리면서 폭음도 심해 졌다.
삶의 의욕마저 잃어 가던 김씨를 다시 세운 건 할아버지·할머니의 웃음소리였다. 김씨는 "어느 날 서울 종묘공원을 지나가는 데 어르신들께서 비둘기처럼 삼삼오오 앉아 계셨다"며 "처연하게 느껴 져서 성대모사 개그를 했는 데 정말 천진난만하게 좋아하셨다"고 했다. 그는 "그때 상대방이 내 개그로 행복해 지면 내가 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김씨는 2001년 야간업소를 다니면서 알게 된 키보드 연주자 강길성(52)씨와 대학가요제 출신 가수 김호평(51)씨와 함께 봉사단체 '늘푸른샘'을 조직해 활동을 시작했다. 서울과 경기도 일대 양로원·노인보호시설을 찾아 다니며 무료 공연을 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장충체육관과 종묘공원에서 노인 수백~수천명을 대상으로 경로 효(孝) 큰잔치를 열기도 했다.
2년째 늘푸른샘 공연을 보고 있다는 오모(72) 할아버지는 "한 번 공연을 보면 스트레스가 확 날아 간다"고 했다. 최모(81) 할머니는 "며칠 전에 아들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계속 기다렸다"며 "더 자주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강에서 제일 많은 건 물이고, 젖소에게 가장 많은 건 우유입니다. 저한테 가장 많은 건 개그죠. 개그는 한강에서 물을 퍼서 주는 것처럼 아무리 나눠도 마르 지 않습니다."
할아버지·할머니 박수소리에 흥이 오른 김씨가 "이번에는 방향제 성대모사입니다"라면서 "치익~ 치익~" 했다. 노인들의 웃음과 박수소리가 더 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