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인간이 사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에 대한 철학적인 해답을 구하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보통사람에게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이런 적용을 할 수는 없다. 가깝게는 다가오는 선거에서도 정치인들에게 '왜 후보로 나서게 되었느냐?'고 물으면, 자기자신이 행복하기 위해서라고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말들을 요약하면 '다른사람(국민)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한다'일 것이다.
타인의 행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
'자기를 희생하는 고통스러운 길을 왜 굳이 나서려 하는가?'하는 모순적인 행태의 동기를 찾자면, 한편으로는 남을 위해 일하는 것에서 행복을 찾는다고도 할 수 있지만, 명예욕에 의한 만족감은 반드시 원초적 의미의 행복추구라고는 보기 어렵다. 특히 우리 사회에는 명예와도 상관없이 남을 위한 봉사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엄존함을 생각할 때,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다 삶의 목적이 자기자신의 행복추구라고 할 수 없음은 사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완전히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세상에는 자신의 삶 자체가 목적인 다수의 사람들과 타인을 위한 봉사의 삶이 그 목적인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들이 있다.
타인을 위한 봉사의 삶은 고되고 힘들다. 하지만 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기에 그 직분을 맡은 자는 고통을 감수하며 해내고 있고 그 결과로 더러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기도 한다. 사실 그들이 없다면 자기의 삶자체가 목적인 다수의 사람들은 상당히 곤란할 것이다.
장애인은 타인의 행복을 떠받치는 봉사자
흔한 얘기지만 행복의 느낌은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신체의 건강을 행복하게 생각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한 질환자(疾患者)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 신체의 온전함만으로도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장애인들의 상대적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사회를 구성하는 역할의 분담을 이미 태어난 이 세상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출생이전의 관점으로 돌아가 생각해보면, 확률적으로 생겨나는 장애는 일정한 사람들에게 배당될 수밖에 없으며 장애인은 바로 그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짐을 몸소 대신 지어준 이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삶을 살아감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온전한 신체를 가지고 사는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애인을 일반인들에게 부담을 주는 사람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짊어졌어야 할 운명적 직분을 대신 맡아준 자로서 인정되어지고 일반인은 장애인의 삶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이제 장애인에게는, 동정이 아니라 더불어 함께 한다는 캠페인에서 더 나아가, 다른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로서의 예우가 주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