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京範 (2010-04-30)
한중교류시대에 어떻게 大韓民國을 유지할 것인가
  어떻게 大韓民國을 유지할 것인가
- 民族과 文化의 억지차별화는 無用, 세계 속의 역할분담으로



이명박대통령은 한중FTA의 추진을 지시하였다。韓中 교류의 중요성은 이제 새삼스레 말하는 것이 無色할 정도이다. 게다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일부 舊냉전세력의 親美至上상황 유지노력과 일부 북방민족주의 세력의 反中 목소리도 대세를 뒤집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제 한국이 중화경제권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는 것이 불가피하게 되었을 때 어떻게 우리의 定體性을 유지하며 대한민국의 國體를 保全하느냐가 주요 관심사가 되었다. 물론 이 관심사는 기존 대한민국 구성원의 福利 나아가서 중국의 利益에도 부합하는 것이어야지 어떤 悲壯한 決意일 필요는 없고 소용도 없을 것이다.




역사상 한반도 국가유지의 배경




우선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정권이 어떻게 해서 수천년 중국왕조의 곁에 머물면서 나름대로의 정체성을 유지해왔는가를 냉정히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帝國主義 蔓衍의 시대가 지난 지 오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민족, 더 정확히 말해서 血族과, 국가를 일치시키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부족국가시대 이후에 형성된 고대국가는 부족간의 전쟁과 정복에 의하여 병합되고 같은 나라에서 부족별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신분제도가 형성되었던 것이다. 근세에 거의 동일한 민족이 영국, 미국, 남아공, 호주를 통치했듯이 고대 동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고대와 중세에 대륙에서 韓半島로의 移住의 利點은 대륙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일차 소외됐던 자들이 비교적 쉽게 상류계급을 형성할 수 있었고 대륙의 ‘省정부’보다는 자율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반도는 대륙중심과 비슷한 수준의 문화를 가졌기에 북방유목민들과는 달리 안정적인 독립국가의 유지가 가능했다. 비록 토지의 상대적 척박함과 양반귀족의 徵收로 생활이 困難하다 할지라도 피지배계층인 일반백성은 쉽사리 바다건너와 교류하기는 어려웠기에 한반도의 국체는 안정될 수 있었다. (근래한국의 미국중심사회도 같은 효과에 의존한 것이었다. 일반서민은 수백만원을 들여 미국을 오가기 불가능했으므로 미국을 통한 각종 정보와 사회적 利權의 독점은 상류층과 그들에 附合한 자들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이었다.)




韓中의 民族別 區分의 無意味性




중세보다 地理上의 여행이 더욱 활발해진 근세 帝國主義 만연의 시절에 被侵略 국가들은 국가혈족주의를 내세워, 부모가 무능하고 싫다고 떠날 수 없듯이 배신할 수 없는 것이 조국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지하여 공동체의식을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언제까지나 그런 사상을 강요하긴 곤란하다. 고대에도 백성을 잘 다스리는 나라로 사람들이 몰려 나라가 盛衰했듯이 이제 자기나라가 싫어서 떠나가는 국민을 배신자라며 逼迫하는 나라는 북조선을 마지막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져야 한다.

韓中의 구성원의 차이는 혈족의 차이가 아니라 지역적 특성에 따른 생활전통의 차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과 중국의 시장에 같은 사과 당근 오이가 쌓여 있어도 한국의 것들과 중국의 것들은 다른 느낌이 난다. 그런데 억지로 한국에는 당근만 있고 중국에는 무만 있는 것처럼 구분 짓는 것은 무리가 있다.

물론 언어의 主軸이 다르기 때문에 그렇게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느 언어를 썼던 민족이 상대적 다수였다는 증거는 되어도 그들이 구성원의 전부라고는 볼 수 없다. 중국에도 우랄알타이어계통의 민족이 있었지만 거의가 흡수되었듯이, 한국에서는 우랄알타이어계통의 민족이 상대적 다수였기 때문에 비록 지식어휘에 있어서는 한자어가 다수였다고 해도 언어의 체계는 우랄알타이어를 따르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자어사용族과 우랄알타이語族은 공존의 관계이지 어느 한쪽이 애초의 주인이었다고 하기도 곤란하다. 三面이 바다로 싸인 해양국가지역이라는 한반도에 ‘魚(fish)’에 해당하는 말이 없어서 ‘물고기’라고만 하는 것을 보아도 흔히 순 우리말이라고 일컫는 우랄알타이계통語를 한반도의 고대 토착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이다. 진정한 고대한반도 토착인과 고대한반도語는 거의 혹은 완전히 절멸되었지 않았나 하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문화의 차별화로 가능할 것인가




그러면 앞으로 무엇으로 한국을 한국답게 하고 길이 유지할 바탕이 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한국의 중국과의 문화적인 차별화를 ‘꿋꿋이’ 지키면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중국을 지배했던 몽고족과 만주족이 저들의 문화를 잊고 漢族文化를 선호했기에 쇠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몽고족은 저들의 문자를 國家公用文字로 지정하여 漢字文化의 國家的地位를 제한했고 만주족 또한 저들의 만주어를 宮闕懸板에 共用하면서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 노력했다. 특히 그들 모두가 漢族文化를 선호하기는커녕 자신들의 풍습을 漢族에게 강요했다는 것은 이미 역사교육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다.

要는 그들의 고유문화만으로는 문명국의 유지를 위해서는 역부족이었음에도 억지로 上層文化의 지위를 유지하려다 무너진 것일 뿐이다. 만약 그들이 대륙정복의 욕심을 내지 않고 단지 우수문명을 받아들여 富國에 힘썼다면 오늘날 비록 크지 않아도 훌륭한 강국으로 남았을 것이다.

한국은 대륙과 같지는 않은 전통문화를 가지고 있지만 대륙과의 교류 특히 상류층문화의 교류로 인해 뚜렷이 차이나는 문화가 부족해 보인다. 이것을 不滿삼은 민족주의자들이 한글을 대륙문화와의 차별화의 수단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애초에 ‘어리석은’ 피지배계층에게 지배층의 문화를 교육시키지 않고 訟事등의 경우에 의사소통하기 위한 수단으로 지어진(사실 양반과 상민이 글로 의사소통을 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訟事의 일밖에는 별로 없을 것이다.) 한글이라는 것을 大韓民國을 상징하는 固有文化로서 삼으려는 것은 소용없다. 문화의 깊이와 경쟁력이 이웃나라와 比肩되어야 독립국으로서 자리할 수 있는 것이지 단지 구별된다고 해서 低級의 문화를 고집하는 것은 차차 독립국가로서의 역량을 잃게 될 것이며 이후 타 국가내의 소수민족으로서의 존립을 위해서나 적당할 뿐이다.




국가체제의 利點을 활용




문화적 차별화로 억지구분을 하려는 것은 국체유지에 아무도움이 안 된다. 그것은 공식적인 다민족국가 내에서의 특정민족을 보존할 목적에나 유용할 뿐이다.

우선적으로 현시점에서 獨立國體로서의 利點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의 젊은이들은 병역의무를 지는 등 한국의 국민은 한국이 大國의 一部分이 아닌 독립국체를 유지함에 따른 여러 부담을 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反對給付的인 이득을 얻지 못한다면 병역의무자 등의 국가를 위한 봉사도 헛된 것이 될 것이다.

근래 탁구선수 당예서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에서 국가단위의 경쟁에서 밀려난 인재에게 지방대표를 하느니 다른 국가단위의 활약을 권유하여 영입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다. 그들의 대표에서 탈락한 次下位의 선수라고 해서 반드시 실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없으며 얼마든지 후에 올라설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각계의 우수인력을 受容하면 한국은 精銳化된 인재들의 활동공간이 될 것이다.




韓國의 國體維持에 따른 韓中의 相互利點



한국이 중국과 통합하여 하나의 국체로 되는 것이 중국의 욕심이라는 것은 短見이며 그것은 중국 나아가 동양문화의 保全에 있어서 결코 바람직한 것이 아니다. 한국과 중국은 별개의 國體를 유지함으로써 동양문화의 保全에 기여해왔다.

역사상으로 보면 중국의 몽고정권에서 漢字가 國家公用字의 지위를 박탈당한 시대에도 한국은 漢字문화를 변함없이 지켜왔다.

중국이 공산화로 인해 국가의 상징(國旗)을 서구공산사상을 따라 지었음에도 한국은 동양문화의 精髓인 太極을 국가의 象徵으로 삼아 동양문화의 자존심을 지켰다.

춘추전국시대가 지난 후에는 천자의 나라만이 홑字 국명을 쓸 수 있었다. 淸의 쇠약이후 설립된 大韓帝國은 홑字 이름의 國名으로서 이를 계승한 大韓民國은 正統 天子의 나라의 脈을 잇는다고 볼 수 있다.

反面에 근래 韓國의 漢字교육부재로 인해 몰락위기에 처한 한국의 전통문화는 중국이 있음으로 해서 한자교육의 動機를 더해 回生의 힘을 얻고 있다.




三國志魏志東夷傳에 머문 시대착오에서 벗어나야




시대착오적 사고라는 말은 흔히 쓰는 말이다. 보통 한세대쯤 전의 가치관을 지금에 적용하려 하는 사람을 지적할 때 쓰는 말이다. 그런데 단지 몇십년이 아니라 이천년이 지난 시대착오의식을 가지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東夷族과 華族의 갈등을 문제 삼으며 중국과의 대립적인 역사관에 있는 사람들… 三國志魏志東夷傳의 思考에 얽매인 시대착오적인 생각은 버려야 한다.




지금 동양문화의 중심은 대륙내부의 西安과 洛陽이 아니다. 黃海를 접한 北京과 上海 그리고 서울(漢城)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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